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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Big Issue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오후 11시 50분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하였다고하며, 향년 83세라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은 약 1년여 간 투병 생활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라는

평소 자신의 뜻을 가족들에게 전하였으며, 가족들은 김우중 회장의

의견을 반영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대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해 8월말 베트남 하노이 소재

GYBM(Global Young Businees Manager, 청년사업가) 양성 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져 통원 치료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자제해오다

12월말부터 증세가 악화돼 장기 입원에 들어갔다."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대우 관계자에 따르면, 김우중 회장은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BM 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줄 것"을 유지로 남겼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 '세계경영'을 가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으며, 당시 대우의 수출규모는 한국 총 수출액의 약 10%에 달했다고 합니다.

1998년에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 1323억달러 중 대우의 수출액은 무려 186억달러로 약 14%나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창업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었던 바 있습니다.

 

1969년에는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설립하였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시대를

연 이후 김우중 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창구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그리고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하였고, 단기간내에 경영정상화를 이뤄 한국의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하였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서 수단(1977년)과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고 합니다.

 

1980년대 무역과 건설부문을 통합하여 (주)대우를 1982년에 설립하였고,

그룹화의 길에 들어선 후 자동차와 중공업 그리고 조선과 전자 및 통신, 정보시스템,

금융, 호텔, 서비스 등 전 산업의 내실을 갖춰서 세계진출을 본격화 하였다고 합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는 41개의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 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있었다고 하며,

1998년 당시 자산총액은 76조 7000억원과 매출 91조원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1983년에는 국제상업회의소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이른바

'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89년 에세이집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내면서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면서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 도했다고 합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자문위원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외환위기 와중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서 경상수지 년 500억달러 흑자를 당성하였고,

금모으기운동 등 경제회생을 위해서 노력하였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은 1967년 대우실업에서 출발하여 30여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와

396개의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부채 규모가 89조원에 달하였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를 맞은 후

1999년 8월 채권단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해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우중 회장은 2010년부터 마지막 봉사라 여기면서 GYBM(Global Young Businees Manager)

양성사업에 매진하였고, 베트남과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한다고 하며,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라고 합니다.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고 하며,

영결식을 12일 오전 8시 아주대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우중 회장의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과 장남 김선협 (주)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주)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영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와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고 합니다.